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덴만 여명 작전 (문단 편집) === 석해균 선장의 용태 === 오만 대학병원에서 1차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위중한 상태에 빠졌고 이에 대한민국에서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이국종]] 교수팀이 현지로 급파되었다.[* 이국종 교수가 펴낸 골든아워 1권에 따르면 당초에는 서울의 모 대형병원 중환자의학 전공팀이 파견된다고 하여 이국종 교수는 현지로 갈 생각을 접었으나 한밤 중에 외교부로부터 그 의료진이 갈 수 없게 되어 이국종 교수팀이 가 줄 수 있겠는가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가 직접 서술한 바에 따르면 석해균 선장은 이미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었으므로 한국 의료진이 가더라도 실패의 부담이 매우 컸고 병원 내에서도 이 교수가 오만행을 결정하는 바람에 "병원 윗선에서 불같이 화를 쏟아내는" 등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국종 교수는 오만에 도착하여 2차 응급수술을 집도했으나 석해균 선장의 용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해답은 한국으로 응급 이송하여 근치수술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생사가 경각에 달린 환자였으므로 일반 여객기나 군용기로는 이송이 불가능했고 전문적 의료장비를 갖춘 이른바 '[[에어 앰뷸런스]]'가 있어야 했다는 점이다. 이국종 교수팀의 김지영 코디네이터[* 이국종 교수와 함께 아주대학교 중증외상센터 설립부터 함께 해온 초 베테랑 간호사다.]가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독일의 에어 앰뷸런스 회사와 접촉하는 데 성공했으나 한국의 여러 정부 부처들이 미적미적하면서 결정을 미루는 사이 이 에어 앰뷸런스는 다른 환자 이송을 위해 떠나 버렸다. 이 교수 팀은 다시 스위스의 에어 앰뷸런스 회사 '레가(Rega)'와 급히 접촉하여 비행기를 섭외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 회사는 계약금을 바로 입금하든가 아니면 정부 차원의 지급보증을 요구했다. 석해균 선장의 치료를 위해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이국종 교수는 어떤 정부 부처도 확답을 주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책임하에 계약서에 지급보증 서명하고 팩스를 보 내버렸다.[* 이국종 교수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보내려고 하자 김지영 코디네이터가 교수님 미쳤냐며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국종 교수는 몰래 팩스를 다시 받아 사인해서 기어코 보내 버렸다. 잠시 뒤 이 사실을 안 김지영 코디네이터는 얘기를 듣다 말고 그냥 방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파일:28254899136_a17a15e00e_b.jpg|width=100%]]|| || 스위스 Rega 사의 [[봉바르디에]] 챌린저 604 [[에어 앰뷸런스]]. 석해균 선장을 국내 이송한 그 기종이다. || 이때 에어 앰뷸런스 총 이용대금은 '''380,000 달러''', 한화 '''4억 원'''이 훌쩍 넘는 거액이었다. 안 그래도 병원 내에서 눈총을 받던 와중에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이 거액을 이국종 개인이 고스란히 부담해야 할 판이었으니 팀원들이 "교수님 미쳤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었던 상황이다. 4억이 넘는 이송료를 부담하고 환자가 사망이라도 하면 단기적으론 여론 때문에 못 하겠지만 장기적으론 병원에서 잘릴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비용은 내가 낼 테니 지금 당장!!"''' 의 일화의 전말이다.[* 자세한 경위는 이국종 교수의 저서 [[골든아워(책)|골든아워]] 1권에 서술되어 있다.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이국종 교수가 맞닥뜨린 당시 상황은 절체절명의 연속이었다. 한국 의료계의 질시, 정부부처의 무관심과 소극적 협조 등 온갖 상황에 짓눌려야만 하는 이국종 개인의 심정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전문 의료설비가 탑재된 에어 엠뷸런스는 2022년까지도 한국에는 없었으며[* 다만 2023년 기준으로는 '플라잉닥터스' 소속의 에어 앰뷸런스가 운항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에 관한 관련 인프라와 인력을 조성 및 육성해야 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조성된 바 있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잠시 논의되다가 사라졌다. 이국종 교수와 중증외상센터 정책 분야에서 협조하던 당시 민주당 [[허윤정]] 전문위원[* 이국종 교수가 여러 차례 '중증외상센터' 정책은 그의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증외상센터 설립과 운영 정책에 공이 큰 사람이다. '골든아워' 책에 허 위원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다. 제20대 국회의 종료를 4개월 앞두고 김성수 전 의원의 국무총리비서실장 임명으로 인해 궐위된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받았다.]의 중재와 도움으로 청와대가 각 부처 조율에 나서면서 국토교통부가[* 당시 국토해양부] 아주대학교 병원과 가까운 성남공항을 개방하는 등 준비 끝에 마침내 석해균 선장은 한국으로 이송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헬기로 아주대학교 병원에 이송된 석선장은 이국종 교수 집도 하에 대수술을 받아 마침내 생명을 되찾았다. 2011년 2월 3일 오전 10시 의식을 회복한 석해균 선장은 이후 상태가 악화와 호전을 오갔지만 [[http://www.ytn.co.kr/_ln/0103_201102031505509031|천천히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2011년 3월 5일 이명박 대통령은 석해균 선장을 방문하며 석해균 선장이 걸어나와야 아덴만 여명 작전이 끝난다고 위로를 보냈다. 석해균 선장은 2011년 11월 4일 퇴원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